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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래플즈 타운 클럽. 지금은 고인이 되신 사촌형님의 배려로 상류층만이 머물 수 있다는 래플즈 타운 클럽에서 싱가폴 신혼여행을 즐겼습니다. 싱가폴 얘기를 할 때면 항상 형님이 생각나서 숙연해 지곤 합니다.

래플즈 탄운 클럽을 소개하기 전에 래플즈 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의 역사를 논하면서 래플즈 경을 빼놓고 얘기한다면 싱가포르는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래플즈는 싱가포르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잠깐 스탬포드 토마스 래플즈(Stamford Thomas Raffles)에 대한 역사를 애기할 까 합니다.


박물관 앞에 있는 흰색 래플즈 동상, 좀더 걸어가면 검은색 래플즈 동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나라는 짝수를 성스럽게 생각하는 개념이 있는 듯 하다.


스탬포드 토마스 래플즈(Stamford Thomas Raffles, 1781∼1826년). 당시 싱가포르는 말레이지아 조호루랴우(Johore-Riau) 술탄국에 속한 땅이었는데, 이 술탄국은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는 동남아시아에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경쟁할 후보지를 찾고 있었고, 영국의 무역 중계지로서 이 싱가포르를 바라다보게 된다. 팔짱을 끼고 있는 저 사나이는 영국의 경제에 공헌할 땅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당시 말레이시아에서는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자국의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영국 동인도 회사소속의 함대를 이끌고 말레이반도 남단을 탐험하다가, 1819년 1월 29일, 부하인 윌리암 파커(William Farquhar), 인도인 병사 몇 명과 함께 싱가포르 강변의 작은 말레이 어촌에 상륙했다. 바로 그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 지금 백색의 래플즈 상이 세워져 있는 싱가포르 강변이다. 현재의 래플즈 상륙지 주변은 싱가포르의 어느 곳보다도 잘 정돈되어 있지만 래플즈가 상륙하던 당시에는 늪과 수초지대였다. 그리고 수초 지대 주변에는 말레이 족 원주민 어부들 약 150명이 살고 있었다. 벤쿨렌(Bencoolen, 현재의 수마트라) 총독이었던 래플즈는 말레이 지역을 선점하고 있던 네덜란드를 누르고, 식민지의 무역 기지로서 싱가포르를 조호루랴우 술탄국으로부터 사들이게 된다. 1819년 2월 6일, 래플즈는 현재 싱가포르 정부청사 앞 운동장이 된 파당(Padang)에서 조호루랴우의 후세인(Hussein) 술탄을 만난다. 그는 조호루랴우로부터 영국이 싱가포르에 무역기지를 건설할 권리를 갖는 협정을 맺게 된다. 이로부터 현재와 같은 무역도시 싱가포르의 역사가 출발하게 된다. 이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영국이 싱가포르를 장악하는 데에는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조호루랴우 왕국을 지배하던 네덜란드가 싱가포르는 조호루랴우 왕국의 일부라면서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24년의 영국-네덜란드 간의 조약에 의해 그들의 식민지는 최종 조정되었다. 이 조약에 의하면 영국은 말레이시아의 말래카, 페낭, 싱가포르를 얻고, 네덜란드는 수마트라 등 인도네시아를 계속 확고하게 지배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싱가포르를 세계의 부국으로 만든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지만 싱가포르 탄생의 아버지는 래플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리고 아직도 싱가포르 국민들은 영국 식민지 역사에 대해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경 입니다. 너무 덥고 지친 나머지 전경이나 외부 사진이 몇 장 밖에 없더군요.
사진은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는데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신혼여행이라고 특별히 이렇게 내부를 아름답게 꾸며 주셨습니다. 감동이었지요.


래플즈 타운 클럽은 전객실이 스윗 룸이라고 하던데... 흠흠 처음으로 스윗 룸에 머물러 봤습니다.


요고이 욕조인디, 스파가 죽이죵... 카카카


Posted by 캔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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