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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6. 16 서대문 형무소 방문

* 이미지는 1280X857로 리사이즈와 정말 과도한 샤픈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 (액션에 적용된 샤픈이 좀 과했나 봅니다. 귀차니즘이 적용되어 걍 수정안합니다)
* 클릭해서 크게 보세요.



아래는 서대문 형무소 홈페이지에서 발췌 했습니다.
이곳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의주로 247(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는 대한제국 말에 일제의 강압으로 감옥이 지어져 80여년 동안 우리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이었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제 점령하고, 이 땅을 발판 삼아 대륙으로 침략하려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그들의 침략에 항거하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한 감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한제국시대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건립한 독립문 근처에 1907년부터 대규모로 감옥을 지었다.

이 감옥은 일본인의 설계로 당시 화폐 약 5만원을 들여 지었고, 480평 규모의 감방과 80평 정도의 부속 시설로 수용인원은 500여 명 정도였다. 그때 전국 8개 감옥의 총 수용인원이 300여명인 것과 비교하면 대규모의 감옥이었다.

1908년 10월 21일에 경성감옥(京城監獄)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뒤 일제에게 우리의 국권이 빼앗기자 이에 항거하는 민족 독립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일제는 수많은 우리의 애국지사들을 체포한 뒤 투옥하였다. 수용인원이 증가하자 그들은 마포 공덕동에 또 다른 감옥을 지었고, 이 때문에 1912년 9월 3일에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23년 5월 5일에 ‘서대문형무소’로 그 이름이 다시 바뀌어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기까지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어 고문을 받으며 처형되거나 옥사(獄死)했던 악명 높은 곳이다. 1945년 11월 21일에 서울형무소로 바뀌고, 1961년 12월 23일에 서울교도소로, 1967년 7월 7일에 서울구치소로 바뀐 뒤 1987년 11월 15일에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가기까지 이름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민족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채 1992년 8월 15일에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다.

1987년에 경기도 의왕시로 옮길 때 옥사(獄舍)는 모두 15개 동이었으나, 현재는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해 옥사 7개동과 사형장 보안과 청사를 원형대로 보존하였다. 그중에서 옥사 3개동 (제10,11,12옥사)과 사형장은 1988년 2월 20일에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서대문구에서는 1995년부터 서대문독립공원 사적지에 대한 성역화사업을 시작하였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어 모진 고문과 탄압을 받고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워 주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기 위해 새롭게 단장하여 1998년 11월 5일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西大門刑務所歷史館)’을 개관하였다.

 
 



어익후 지루한 내용은 여기서 마치고...


역에서 걸어오면 이 반대편 길에서 오게 되어 있습니다. 토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없어서 한산 했습니다.




입구 입니다. 일금 일천 오백원 보시 하고 들어가 봅니다.




들어가면 처음 그림의 1번 보안과 청사에서 전시물을 볼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연혁과 활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좁은 일인실 독방과 작은 관처럼 생긴 역삼각형으로 만들어진 고문실을 이용해 볼 수 있습니다. 고문에 끔찍하게 살해당한 사람의 독립투사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 많은 전시시설과 홍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곳은 정중히 사진을 삼가하는 분위기라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전시실을 나와 감방을 지나면 볼 수 있는 건물입니다. 제가 방문할 때면 언제나 처럼 날씨는 좋았습니다만 그닥 따뜻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늘 참 맑네요. 우리 독립투사 분들의 혼이 서린 하늘이라 생각하니 숙연합니다.




나무 참 잘자라네요.


 





1900년대 초에도 이렇게 화창한 날씨가 있었을까요?




이 곳 넘어에도 우리의 자유가 있었으면...




이제 이곳은 우리들의 휴식처...





 사형장 밖에 있는 미루나무 입니다. 같은 시기에 심어진 사형장 안에 있는 미루나무는 독립투사의 혼이 묻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직도 사형장 안 미루나무는 형편없이 작더군요. 이 미루나무는 우리의 지난 과워의 치욕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사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사형대 그리고 시진을 처리하기 위한 뒷 문입니다.





지난 과거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 독립투사들의 시체를 이 굴을 통해 몰래 빼돌렸다고 하는군요. 일제말기 일제가 막아둔 곳을 발굴하여 복원 시켜 두었다고 합니다. 저 넘어에 대한의 안녕이 있기를...




...




 
이길은 어디와 연결되는 것인지...




이 무시무시한 곳이 다시는 이 나라에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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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캔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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